연의역사
 
   한국연의 기록  
 


선덕여왕 16년(서기 647)은 왕이 돌아가신 해이고(정월 8일), 진덕여왕이 즉위한 해이다. 대신(大臣) 비담(毗曇)과 염종(廉宗)은 여왕으로서는 정사를 잘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하며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므로 왕은 친히 궁내에서 이를 막았다.

이 때 비담 등은 명활성에 주둔하고, 왕의 군사는 월성에 주둔하여 서로 치고 막기를 10여 일 동안 하였으나 승부는 나지 않았는데, 병진(丙辰)날 밤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. 이에 비담 등은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"내가 듣건대 별이 떨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유혈이 있다고 하니 이는 틀림없이 패망할 징조라" 하자 군사들이 큰소리를 부르짖으니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.

여왕은 이 소리를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을 때, 김유신 장군은 왕을 보고 말하기를 "길(吉)하고 흉(凶)한 것은 무상한 것으로서 오직 사람이 그렇게 여겨 올 따름입니다. …… (중략) …… 그러므로 지덕(知德)은 요망(妖妄)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온즉 성진(星辰)의 이변 따위는 그다지 두려워할 것이 아니오니 청하옵건대 대왕께서는 너무 걱정 마옵소서"하고는 곧 우인(偶人-허수아비)을 만들어서 연(鳶)에 달고 이를 바람에 따라 띄우니 불덩이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.
그 다음날 사람들을 시켜 길가에서 선전(宣傳)하기를 "어제 저녁에 떨어졌던 별이 간밤에 도로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"하여 적도들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만들고, 또 백마를 잡아서 별이 떨어진 곳에 제사를 지내고 …… (중략) ……이에 유신(庾信)은모든 장병들을 독려하여 적을 공격하니 비담의 무리가 패주하므로 이를 격추하여 모조리 몰살하고 그 구족(九族)을 죽여버렸다.

≪三國史記(삼국사기)≫(卷(권) 41) 열전 제일 김유신(金庾信) 상조(上條)

위의 것은 정사(正史)에 나타난 것이고 우리 민간에는 연의 기원에 대하여 전해 오는 말이 몇 가지 있다.

첫째, 고려 말기의 명장 최영(崔瑩)장군 탐라(耽羅-제주도)의 목호(牧胡-蒙古人으로서 목축하는 자)의 난을 평정할 때에 병선이 탐라에 근접하였으나 주위가 절벽이라 한 꾀를 내었는데, 수 많은 큰 연을 만들어서 그 연에다 불을 달아 지자성(枳子城)을 정벌하였다고 한다. 또 일설에는 병사를 큰 연에 매달리게 하여 병선에서 이것을 날려 그 성을 공약하였다고 한다. 이에 대한 기록으로는 간단하기는 하나 《동국세시기(東國歲時記)》상원(上元) 조에 諺傳昉自 崔瑩伐耽羅之役 이라 하여 "속설에 최영장군이 탐라를 정벌할 때에 시작된 것"이라 하였다. 따라서 그 시원을 최영의 탐라 정벌 때부터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.

둘째, 삼국시대에 전쟁이 있었을 때, 자기 편끼리 진지 사이에 통신 연락의 한 방편으로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. 그리하여 일부에서는 그 기원을 삼국시대로 보는 이가 있다.
셋째, 당(唐)나라 안록산(安祿山)이 궁중의 양귀비(楊貴妃)와 내통(內通)하기 위하여 연(鳶-솔개)을 만들어 띄운 데서 비롯되었다는 외래설(外來說)이다.


참 고 문 헌 최상수 「한국 민속놀이의 연구」. <성문각> 1988. pp. 54~55


 
    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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